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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홍은중학교 교복을 입은 굉장히 낯이 익은 아이를 보았다.
저 또래에 내가 알만한 친구는 없는데
유심히 보니 눈매와 턱선이 내 사촌동생과 닮은거다 아, 그래서 익숙하다 느꼈던건가

버스를 타면서 흘깃 명찰을 보았는데, '○영주' 라고 적혀있었다
굉장히 낯익은 이름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해
주변에 남자아인데 여성스러운 이름 가진 아이가 누구였던가.

한정거장을 채 가지 못해 성희를 기억해냈다.
영주는 성희의 셋째 형이었던가, 혜원이의 오빠였다 기억해냈다.

성희와 혜원이가 굉장히 보고싶었다
내가 스물 둘에 여덟살 성희를 만났으니, 지금은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었겠다
성희가 오빠니까 동생한테 양보 할 줄도 알아야지
굳이 내 손을 잡고싶어했던 성희의 손을 놓고 혜원이를 안아주었었다
성희는 하루종일 뚱해있더니 이후 며칠 연달아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고작 여덟살 아이를 큰 아이라 생각하고 애정을 동생에게 넘겼던 게 미안해 울었었다.

방학교실이 끝난 이후에도 종종 전화해서 선생님 뭐해요 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언제이던가 성희가 3학년이 되던 해 초였던가
길 건너에 있던 놀이터에 갔던가 사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때 내 손을 잡았던 게 성희였던가 윤나였던가
윤나와 갔다가 성희를 만났던가 성희와 갔다가 윤나를 만났던가
어쨌든 아기 엄마 마냥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어울리던 성희와 윤나를 보고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처음엔 엄마미소였는데 점점 하품이 나서 같이 놀아줘 결국 모래밭에 들어갔더랬다
늙은 여자가 함께 놀아달라고 하니 어울려 놀던 많은 애들이 우아 뭐에요 했지만
윤나와 성희는 웃으면서 손을 잡아줬어.

다시 얼굴을 보니 그때가 새록새록하다
친구 셋과 탔는데 여전히 말수가 적다 그 때와 똑같이.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데다가
혹 기억하도라도 친구들과 함께 있는 사춘기 소년에게 말 거는 건 조심스러워서 참았다.

어느 날 귀가하는 아이들과 마주쳤으면.
그 때 처럼 손을 잡고 동네 분식점에 빙수를 먹으러 가고싶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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