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그가 내가 바라던 나의 짝 아닌 거, 안다.
선택과 동시에 어떻게든 최선으로 만져가실 것은 알지만
지금 같은 모습으로 관계가 지속된다면 나는 사랑받는 사람으로의 행복을 느끼기까지
굉장히 많은 내 에너지를 쏟아야 할 거를 안다.
과연 그 과정을 내가 온전히 인내하고 감당해 낼 자신이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아직은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도 없어.
고심고심 하지 못한 말을 꾹꾹 눌러 메시지를 적고 후련하다 다 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이 되니 또 새로운 감정이 떠오르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어제의 메시지가 조잡하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이제껏 상대가 누구였든 연애를 시작하면 그와 나 둘
그 위에 함께 움직이실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래서 자꾸 내 힘으로 하려는 고질적인 문제가 떠올라서 많이 울었다.
심지어는 그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이별을 돌아보고 곱씹으면서, 누구와의 만남이든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사람 그 자체로 이전에 그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거를 다시금 깨닫는다
올해 내게 주어진 여러 역할을 감당해내는 데
굉장히 적절한 때 적절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하필 이 때 만나게 좋아하게
헤어지게 괴롭게 느끼게 하셨나.
울고 있던 내 어깨를 붙들고 내려놓으면 편해질거다 말해주었던 그 날 밤과,
그 이전 따뜻한 때 내 손을 잡고
맞지 않는 부분들을 지혜롭게 이겨내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때가 기억이 나.
나는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했다 한 걸음 더 그 너머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로도 이미 내 속은 까매서
그 이상 참지 못한 그 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보고싶다.
그가 이야기했던
광화문 그 거리를 함께 걷고 싶고
함께 누워 별을 보고 싶고,
다음에 사기로 미뤄두었던 그의 겨울 옷을 함께 사고싶고
각자 맺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하고 싶다.
고작 요 얼마 새에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익숙해져버린 그게
얼마나 예뻤던 순간이었던가 새삼 느껴지네.
그에게 답변이 없어서 후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답변이 오기를 바라는,
그래 혜윤아 고맙다 잘 살아, 깔끔한 마무리 지어주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해 내가 잘할게, 말해주기를 바라는
그러나 막상 후자의 메시지가 온다면 그가 나의 최선인가에 대해 또 다시 고민을 시작할
홀로 온전하지 못한 나의 나약함이,
참 못났다.
새 아침을 맞을 때마다 감정기복의 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또 다시 괜찮아질 것 알고 있고
만남이 짧았던 만큼 회복의 기간도 그만큼 짧기를 바라고 있다 제발.
그렇지만 일년이 되었든 하루가 되었든 한시간이든 일분이든
금새 없어질 감정이어도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은 어쩌면 이렇게 날카로울까.
이별을 말한 게 어느쪽이었든
좋게 헤어졌든 아니든 만남이 길었든 짧았든 드러내든 아니든
처음도 아닌데 이별은 늘 너무나 새롭고 겪을 때 마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
가장 바라는 건 정말 기적처럼 그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거야.
그렇지만 진짜 사랑했다면 그 와중에 나에게 키스하는 그런 절망적인 일 따위는
없었어야 했다
택시를 타던 나에게 2만원을 내밀던 그의 손과
아주 값싼 사람이 된 것 같은 그 때의 기분.
그 날의 그라면 나는 절대로, 연인으로의 그는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 뿐더러,
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 마음이 오백번을 말해도
나를 위해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
머리로 알고있다.
바라기는
그 날의 그간없던 스킨십은
어차피 마지막, 될대로 되라의 마음이 아닌
계속 함께 하고싶은 마음에 대한 반증이었기를.
가장 바라는 건 정말 기적처럼 그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거야
그 마음을 신뢰할 수 있다면
지금은 조금 다르더라도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맞춰가는 그 시간을
좀 더 여유있게 맞을 수 있을텐데.
혹 아니더라도 자존감을 낮추지,
말 것.
단지 그와 내가 맞지 않았을 뿐,
나의 잘못도 그의 잘못도 아니다.
죄책감과 피해의식의 경계,
힘겹다 어느쪽도 치우치지 말 것 이 상황에 느낄 감정이
아니다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