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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시절을 누리지 못한 나를 반성

혜윤 2022. 7. 20. 12:45

 

머리를 자르려는데, 어쩐지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대해주는 곳에 가고 싶어서

치과 가는 날 타이밍이 맞는 때만 가끔 들르던 미용실에 가려고 오랜만에 학교 앞에 왔다.

모교라고 하기엔 학창시절을 너무 대충보내기도 했고,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포기 사태 이후로 일말의 애정마저 사그라든 상태라 어색하긴 하지만

평소와 다른 새로운 환경이라 감정적으로 전환이 되는 것과, 스무살 초반의 어린 내가 떠올라서

나무가 예쁘게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일을 하는 기분이 조금 설레게 낯선 마음이다.

 

큰 대로변이야 일터 때문에도 치과 때문에도 자주 지났지만 학교 가까이까지 온 것은 너무너무나 오랜만인데

그 때 기억하던 많은 곳이 새로운 곳이 되거나, 이전과 같은 가게여도 새로 단장해서 낯설어졌고

사실 학교 부근 가게라는 게 나한테는 좀 익숙하지가 않다.

대부분 학생식당이나, 매점에서 김밥이나 짜장범벅 같은 걸 먹으면서 끼니를 때웠다.

아, 베어물때마다 식빵 사이로 아이보리색 계란 범벅이 빵실하게 튀어나오던 속이 두툼하던 1,200원짜리 샌드위치랑.

종종 우유에 땅콩샌드나 칼로리 바란스를 사 먹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기억하던 자리에 크게 변함 없는 모습으로 있는 건 학자금 대출 상담을 받던 신한은행 정도랄까.

아 생각해보면 그마저도 당시엔 조흥은행이었던 것도 같고 ㅎ

 

그냥 내 생애 그만큼 많은, 그만큼 다양한 여성들과 부대끼며 지낼 기회가 없었는데 그 지점이 좀 아쉽다.

여고 시절이 즐거웠어서 여대를 선택했던 사람으로서

고등학생때와 다르게 화장법이나 연애 이야기가 주 된 주제가 되는 환경이 낯설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주제의 이야기는 좀 사치스럽다고 여겼었다.

사실 돌아보면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를 접한 것 뿐이지 그게 전부는 아니었는데도.

그리고 그러는 내가 그럼 얼마나 덜 사치스럽고 남달랐느냐 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은,

친구랑 전공서적 여백에 먹고싶고 좋아하는 음식을 번갈아 그리면서,

닭똥집의 날 같은 걸 만들어서 학교에서 딱히 가깝지도 않은 신촌 포장마차까지 가서 닭똥집을 챙겨먹던 주제에 ㅋㅋ

 

당시의 가깝고 좋아하던 친구들과 나누던 마음이 가짜는 아니었지만,

공동체의 중요성을 후천적으로 알게 된 사람이라

당시에 깊고 넓은 마음을 오롯하게 나누면서 관계 맺는 것에 너무나 소홀했던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소홀했다고 하기에는  의미있고 소중한 것인 지 조차 몰랐달까, 그냥 아주 멍청하기 짝이없었다.

각자의 관심사를 더 깊게 나눌 수 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마음을 경험하고

더 많은 게 다양하게 괴롭고 또 그만큼 더 벅차고 기쁜 삶이었을 것 같아.

나는 너무 오랫동안, 지금도 자주 나에게 매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