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한글,

혜윤 2010. 6. 13. 02:31


근 40일만에
인터넷에서 한글로 글 써 본다 장한 혜윤 그동안 잘 버텼어 예쁘다 한글.

여행의 끝머리, 아빠에게 와 있다.
아빠와 둘이 생활하는 건 중학교 2학년 한국으로 귀국하던 해
엄마와 동생을 먼저 보냈던 일주일 남짓했던 시간 이후로 처음이라
그 때 기억이 나 따뜻하고 행복하고 그렇다.

아빠 집은 굉장히 좋고
기사님도 그렇고 집안 일 해 주시는 귀여운 어린 친구도 그렇고,
여러모로 아빠는 사장님 포스가 풍기고
나 역시 아빠 따라 사무실 갔다 골프장 갔다가
친구분들께 밥 얻어먹고 초대받고 쇼핑하고 아빠가 뭐 사주고:; 등의
사장님 딸래미 포스를 풍기는 낯설고 요상한,
감사하지만 낯설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뭐 그런
몸도 감정도 애매모호한 생활을 하고 있음.

신기한 게 여기서 만나는 아저씨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지 않고
어디서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아빠나 아빠의 지인들을 통해
그들의 자녀 혹은 그들이 아는 사람들의
외국에 유명한 학교를 졸업하여 굉장한 어디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다거나,
유명한 디자이너이거나,
아빠 사업을 물려 받기 위해 함께 해외 출장을 다닌다거나
카이스트에 재학중인 미래의 재원,
유학을 가서 올 A를 받아 장학금을 타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선택한 길이고,
각자의 일과 상황에 의미를 두고 본인이 행복하면야 정말 더 할 나위 없겠다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순간순간 내 가치로 내 삶의 걸음걸음과 내 일터를 선택했고
현재 내 일터의 가치와 비전이 더 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들의 시큰둥한, 혹은 기껏해야 아 좋은 일 하네, 정도로 끝내버리는 성의없는 반응이 의아했고
이게 그들의 기준이구나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었다.
솔직히 말하면 실망스러웠지만 사람마다 자기 기준이 있게 마련이니까.

오늘 처음으로 이제껏의 반응과는 다르게
아, 그럼 NGO와는 다른 역할을 하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반가웠는데
답변을 하는 순간 자리를 뜨는 상대의 무례한 행동덕에
기분이 굉장히 상했고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서 사그라들지가 않는다.
물론 나보다 어른이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어른답지 못했다.
설사 상대가 상꼬맹이었어도 존중은 필요한거니깐.

처음에는 내가 싫어하는 어른 집단이 좀 거북스러운 정도였는데
이후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 충격적이고 제일 슬펐던 건,
내가 남들 보기에 훌륭해보일 스펙을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거다 순전히 아빠 때문에.
아빠는 화려한 스펙 대신 내가 가진 좋은 점을 알고 있을거란걸 알지만
아빠가 속한 세계에선 그것을 어필해도 크게 인정받을만한 것이 아닌 게
초라하다 라고 생각했다는거다.

슬프다 수영장이 있는 정원과 좋은 차를 자랑하는,
나라면 절대 그것만으로 부러워하지는 않을 것들을 자랑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그래서 연민하는 부류에 아빠가 속한다는 게
그리고 솔직하게는
속한 것 뿐만이 아닌, 어느 정도는 비슷한 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된 게 어쩌면 가족과 떨어져 아빠 홀로 있는 상황 때문일수도 있다는 게.

정자가 딸린 조경이 예쁘게 된 정원과
큰 방이 여러 개 있는 100평짜리 집을 가진, 좋은 차를 자랑하는
일과 시간에 골프를 칠 여유가 있는 것을 좋게 말하는 아빠가 기뻐보이지 않았고
누구든 언제 한 번 만나 밥 먹자, 뭐 하자 이야기에
화색을 띄며 날짜 먼저 못 박고 보는 아빠가 조금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뭐 어쩌면 너무나 일상적인, 자연스러운 일일텐데도
내 이런 감정은 그냥 아빠를 먼 땅에 홀로 둔
그 댓가로 우리 가족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겠지 부디, 그러하기를!

아빠가 우리를 아주 사랑하고 보고싶어했으면 좋겠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외롭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정말 괴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