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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단상

 

작년 여름 내내 완전 나의 데일리 슈즈였던 스니커즈가 새로운 색상으로 출시된 걸 보고

잠깐 넋을 잃었었는데 잠시 후에 보니 이미 결제는 끝나있었다.

말짱한 정신이 아니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비합리적인 건 아니었다.

26일까지만 얼리버드 할인이벤트를 하고 있었다고 나는 현명했어........

 

오랜만에 경험한, 본능이 나의 이성을 완벽하게 넘어선 경우다.

침대에 엎으려서 나의 운동화 보유 현황을 끼적거려보니

딱히 어떤 것을 사 모으는 데 취미가 있는 것도,

더욱이 패션 아이템에 있어서는 잘 활용하는 것도,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닌(줄 알았는)데

그런데도 운동화만 10켤레가 넘는거다

특히 단화 중심으로 다양한 브랜드를 참 골고루 모아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디자인은 귀엽거나 예쁘지 않은, 군더더기 없는 기본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세련미라고는 쫙 빠진 것들이라 길 가다 여기저기서 줏어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상은 내가 직접 구매 한 경우 100% 채도가 낮은 계열이고 베이스 역시 100% 무채색,

포인트 칼라는 주황과 파랑 정도로 그마저도 낮은 채도에 무채색과 조화를 이룬 경우이다.

워낙에 옷 자체도 칙칙한 타입이라 그나마 포인트를 줄 수 있는 게 신발과 가방 정도라고 생각해서 산

당근색 신발의 활용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보아

조화는 생각 않고 그냥 뭐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는 게 효과적인 측면에서 낫겠다는 평가다.

 

학창시절에는, 흠 아니 불과 5년 전쯤 까지만 해도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스포츠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뚱뚱이 신발(예를 들면 나이키 포스류) 을 좋아했었다.

당시 엄마는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운동화에서 구두로 아이템이 바뀌어 갈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시의 내 취향에 관대해 주었고

나도 내가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화에서 다른 스타일의 운동화로라니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놀라울수가.

 

끄트머리에 깨달은 좀 구슬픈 사실 하나는

여성용 아이템으로는 박혜준이 시집가면서 두고 간 부츠 한켤레와 로퍼 하나 뿐이라는거다.

생일선물로 받은 앵클부츠가 하나 더 있는데

신을 일이 없어 방 한 켠에 두었다가 어느 날 보니 누렁이가 물어뜯어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