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가 준 와인을 나눠 마시다가
결국 이창석은 얼마 마시지도 못하고 얼굴이 벌개져서는
아홉시도 채 못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살짝 알딸딸한 상태에서 뒹굴뒹굴 요리책을 뒤적이면서
메뉴 하나 골라봐, 이번 달 안에 다 해 줄게 호기롭게 말했더니
이창석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그 와중에 로스트 비프 페이지를 펼쳐 놓았다.
레시피 재료 중에 레드와인 한 큰 술은, 오늘 먹다 남은 와인으로 쓰면은 되겠다 했지만
남은 건 내가 다 마셨...
다시 3/14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당시의 나는 또 다시 창석을 선택하고,
그 때 처럼 만남과 결혼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될거다.
이창석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
나는 지금 나의 상황과 입장이 조금 혼란스럽다.
그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가 여전히 내 남자친구 같지, 남편이라던지..
아니 그의 지위가 어떠하건과 상관 없이 나는 그냥 나에게 새 가정, 이라는 게 생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 나는 왜 결혼이라는 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진행시켜 왔을까!
이창석은 하던 걸 안(덜)하게 되었는데
나는 안 하던 걸 하게 된 게 많아서 나만 배가 아프다고 했지만 ㅋㅋㅋㅋ
뭘 더하고 말고 이전에
매 순간이 너무 낯선 게 너무너무 낯설어서 그렇다.
본래가 변화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서 더 불안하고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서 그렇다.
이창석이 먼저 잠이 든 나 혼자 살짝 알딸딸한 밤에는
그냥 조금 눈물이 날 정도.
나이 서른 다섯에 참
가지가지 한다 ㅋㅋㅋㅋ